1
2017년 올해로 소헌 정도준 작가는 70세다. 150여 년 전이지만 추사 김정희가 71세에 봉은사의 < 판전板殿 >으로 절필을 하였다. 이점에서 보면 소헌은 남들이 끝을 볼 나이에 다시 시작을 하는 셈이다. 97세의 제백석이라면 한 참 때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지금 소헌은 태초를 소요逍遙하고 있다. 역사 시원으로의 회귀回歸다. 어제의 어제로 거슬러 거슬러 되돌아가고 있 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서書라는 기대를 완전히 배반하고 있다. 습관처럼 읽어 내릴 양으로 덤볐다가는 길을 잃고 만다.
바로 이번 전시에서 처음 등장하는 < 태초로부터 >를 두고 하는 말이다. ㄱ ㄴㄷㅇㅋㅌㅆ... 발음기호들이다. 예컨대 < 태초로부터-ㄴㄷ > 이나 < 태초로부 터-ㄱㅇㅌ >을 보자. 서書가 집이라면 지금까지 기존의 소헌이 지은 집과는 딴판이다. 기둥과 공간구조, 즉 필획[stroke]과 결구[structure]부터 다르다. 붓 을 들고 달려드는 단어나 문장 쓰기가 아니다. 외마디 고함치기 같은 음절音節도 아니다. 그 이전의 음소音素만을 정면으로 불러내고 있다. 하지만 이런 발음기호들마저 모호한 형태다. 꿈틀 꿈틀 서로 몸을 비비며 온통 먹으로 화 면을 가득 메우고 있을 뿐이다. 드러나는 것은 농담濃淡을 달리하며 서멀서 멀 아슬아슬 서로 침범하는 묵墨 특유의 마티에르 뿐 극도의 긴장감만이 감 돈다. 유일한 숨구멍은 보일락 말락 한 흰 틈이다. 만년설의 크레바스인가, 쉽기도 하고 찰나刹那가 아니면 한줄기 빛이다.
좀 건조하지만 우선 < 태초로부터 >시리즈의 작품구조를 분석해보자. 우리 가 잘 알고 있듯 한글이라는 문자언어文字言語는 자음字音자모와 모음母音자 모의 합이다. 우리말을 글로 나타내는 시각기호다. 예컨대‘ 꿈’이라는 글자 가 있다. 자음자모 ‘ㄲ’과 모음자모 ‘ㅜ’에 다시 자음자모 ‘ㅁ’을 글자세계에서 합한 구조다. 즉 ‘초성+중성+종성’이라는 하나의 음절音節구조[게슈탈트]다. 소헌은 이런 음절이라는 최소의 문자언어 단위의 구조마저도 해체하여 다시 음소로 나눈 것이다. 대상을 쪼갤 대로 쪼개어 마침내 더 이상 해체할 수 없을 데 까지 왔다.
태고太古에는 법法이 없었다. 순박淳朴이 깨지지 않았다. 순박이 깨 지자 법이 생겼다. 법은 어디에서 나왔는가? 한 획劃에서 나왔다. 한 획이란 존재存在의 샘이요, 만상萬象의 뿌리다
太古無法, 太朴不散, 太朴一散, 而法立矣, 法於何立, 立於一劃,
一劃者, 衆有之本, 萬象之根.
석도石濤(1642-1707)가『 고과화상화어록苦瓜和尙畵語錄』에서 말한 무법無法 과 태박太朴의 세계, 존재의 근본과 만상의 뿌리를 소헌은 이렇게 현현하고 있다.
2
그렇다면 소헌은 왜 지금 이런 모험을 감행하는가. 사실 알고 보면 모험이 아니라 지극히 당연한 궤적이고 수순이다. 일중묵연一中墨緣과 국전國展을 지 나 17회에 걸친 해외전시 그 다음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 즈음부터 소헌이 염念하면서 극공極工해왔던 지점이 오늘의 < 태초로부터 >이다. 특히 20여 년 간, 프랑스 독일 이태리 미국 등지에서 열린 17회에 걸친 해외전이 소헌 서書를 담금질한 용광로다. 서구의 비평가 큐레이터 등의 안목자들의 추동을 보 면 < 태초로부터 >는 진작에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미술비평가인 로버트 모 건박사의 < 정도준의 자각의 순간 >을 보자.
“정도준은 한자와 한글에서 따온 원래자료를 새로운 방식으로 사 용하면서... 자신만의 예술적 양식을 개발해내었다.... 정도준은 붓 에 우아함과 은근한 태도를 부여하는 새로운 영역을 찾고 있다... 음악의 유희적 형식으로서 여백을 열어가며 시간과 공간사이에 급작스런 역전을 만들어 내고, 천문학자에게 알려져 있지 않았지 만 인간의 가슴에 내적으로 알려진 우주宇宙를 불러낸다.”
소재와 도구의 남다른 응용으로 독자의 예술양식을 개발하는 소헌을 주목 하고 있다. 동시에 음악형식으로 시공을 경영하여 서書의 우주를 불러낸다고 증언한다. < 태초로부터 >의 전조는 당연히 2004년에 시작된 < 천지인 >시리즈 < 도. 01-04 >로 짐작된다. 지금부터 10년 전인 2007년 작 < 한마음 > < 도전 > < 부 귀안락富貴安樂 >과 같은 전각시리즈< 도. 23-25 >도 < 태초로부터 >를 잉태하고 있다. 2017년 3월 소헌이 밝힌 당시 작업정황이다.
“처음 시작할 때 도장을 한개 찍고는 자신이 없었다. 텅 빈 공간을 채울 길이 없어서 이걸 막아주는 길이 뭘까 생각하다가 전각을 하 다 칼질에 돌이 타다닥 튀는 것이 연상이 되었다. 이게 바로 획劃[stroke]아닌가. 획이라는 것은 벽에다가 송곳을 가지고 확 긋는 느 낌이 나야한다. 시멘트 바닥에 타다닥 파편이 튀면서 옆으로 나아 가는데 종이는 물을 머금고 나아간다. 종이와 먹물과 붓의 마찰력 으로 만들어 내야 한다. 먼저 머릿속에 어떤 미지의 형상을 무수히 염念을 하며 담고 있다가, 먹 덩어리를 붓고, 자연도 인공도 우연 도 필연도 아닌 상태로 만들어 낸 것이다.
칼질에서 획劃이 연상되다니. 바로 획劃의 자각自覺이다. 옛사람들의‘ 옥 루흔屋漏痕’이고,‘ 추획사錐劃沙 인인니印印泥’다. 시멘트바닥에 칼질이 모래 에 송곳으로 그어 제끼는 것과 동궤를 이루면서 평면의 선이 아닌 입체의 획 이 자득自得된 것이다. 그 이전 까지만 해도 제각각 이었던 채로 존재하던 소 헌의 작품들이 필획의 자각으로부터 기혈氣血이 연결된다. < 반구대 암각화 > 에서 안중근의 < 영웅 >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필맥으로 통通한다. < 태초로부 터는 > 소재가 자음자모라는 사실이 다를 뿐 2007년의 < 전각시리즈 >를 뒤집 어 놓은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소헌에게 실험과 현대, 전통 과 역사는 따로 없다. 오랜 시간동안 묵히고 삭히면서 서로 한 몸으로 살아 온 존재다.
3
그런데 소헌에게 있어 특히 실험이나 현대라는 이름으로 분류되는 < 태초 로부터 >와 같은 이번 작품은 분명 충격이다.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아마 그 가 어느 누구보다도 전통의 적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서단의 정서상, 특 히 어느 문중門中보다 정통보수를 지향해 온 일중一中문인이 소헌 아닌가. 그 래서 사람들은 은연중에 기대치가 클 수밖에 없다. 우리시대 서가書家 모두 가 변해도 소헌과 같은 작가들은 지금까지 해온 대로 이미 글자라는 틀 속에 서 살아가기로 합의된 서書의 전통을 지킬 것으로. 그것도 그럴 것이 소헌의 70년 서예궤적은 그 자체가 전후戰後 한국서예 역사 한중간을 달려온 결과 물이다. 20세기 한국 서書의 산실이자 도제徒弟교육의 중심인 서숙과 공모전 의 한 중간을 관통해온 사람이 소헌이다. 일중묵연과 미술대전 대상大賞수상 이 그 상징이다.
더구나 적어도 개화기부터 지금까지 20세기 한국서단에서 서書면 서書, 미술은 미술이었다. 동東이면 동이고, 서西면 서였다. 동양예술의 지존을 자 처한 서書가 서양미술을 넘본다는 것은 이단이다. 실험이라도 시도할라치면 서書를 떠난 후에나 가능한 일이다. 서로 서로를 넘나든다는 것은 지금도 은 연중에 금기시 되어있다. 한국 서단의 주류도 여전히 이 지점을 고수하고 있 다. 같은 맥락에서 한국현대미술도 서書에 대해서는 마찬가지 태도와 입장 이다. 아직 서書를 한국미술, 아니 동아시아 예술의 정체나 뿌리로 생각하거 나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입장에서 명암과 공과가 교차하는 한국 현대서단을 넘어 현대미술 한 복판에 까지 간 소헌의 변신變身이 문제되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하다. 뒤집어보면 소헌은 < 태초로부터 > 서단은 물론 미술계까지 우리예술의 본정 신이 무엇인지, 또 어디로 가야하는 지를 가지고 선전포고를 한 셈이다. 요 즘 정치용어로 치면 소헌의 소요는 정통보수에서 진보로의 전향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분명한 것은 소헌의 경우 앞서 본대로 전통과 현대, 정통과 실 험이 따로 아니라 한 몸이라고 하는 지점에서 여느 정통의 보수와 정통의 진보와 차별적이다.
4
새삼 말하지만 < 태초로부터 >는 더 이상 소헌에게 있어 서書와 미술의 경 계가 없음을 증거하고 있다. 글씨에 있어서도 내용과 조형, 텍스트와 이미지 를 하나로, 또 따로 자유자재로 넘나들어 왔다. 이번 전시에서 < 동굴, 태초로 부터 > 섹션이 전적으로 이미지에 호소하고 있다면, < 집 I, 문자의 우주宇宙 > 와 < 집 II, 따로 또 같이 살기 > < 붓길, 역사의 길 >은 이미지와 텍스트가 함께 노래하고 있다.
예컨대 < 태초로부터-ㄱㄴㄷㅈㅋ >< 도. 14 >이 오만가지 먹색의 절대추상이 라면 < 개성사팔척방開聖寺八尺房 >< 도. 87 >은 필획과 서체 만다라다. < 기쁨 >< 도. 29 >이나 < 수처락隨處樂 >< 도. 90 > < 만사형통萬事亨通 >< 도. 91 >은 한글과 한자의 문자 차이에도 불구하고 구조적으로 동궤를 이룬다. 하지만 필획을 어떻게 구사하는가에 따라 조형미감은 구축미에서 율동미까지 진폭은 무한대다. 이 렇듯 소헌에게 실험이나 현대는 전통이나 역사 없이 애초 거론조차 할 수 없 는 존재다. 그 역도 마찬가지다. 이번 전시에서 확인하듯 소헌의 전통과 역사 가 진가를 발휘하는 진정한 지점은 실험과 현대에 가서다. 앞서 본대로 2004 < 천지인시리즈 >와 그 이전의 2006 < 전각시리즈 >가 신호탄이었다면 이번에 첫 선을 보이는 < 태초로부터 >는 그 결정판이다.
다시 말하면 < 태초로부터 > 소요하면서 우리가 평소 서書라고 생각해온 울 타리를 허문 것이다. 더 정확하게는 소헌에게 와서 서書의 경계가 스스로 허 물어진 것이다. 사실 소헌 이전에도 서와 미술의 경계 허물기는 많은 시도 가 있었다. 이미 1960년대 후반에 시도된 김기승의 < 묵영墨影 >을 비롯하여 1990년대와 2000년대‘ 현대서예’와‘ 물파운동’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소헌 과 이전의 시도가 다른 것은 서로가 서로를 버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같은 맥락에서 단색화를 보자. 이미 오래전부터 한국미술의 독자성과 세 계성을 동시에 확보한 이우환 박서보 정상화와 같은 추상미술 작품의 경우 도 서書에 가서는 유구무언이다. 그래서 소헌의 진화변신은 개인을 넘어가는 문제다. 서단의 오랜 시도를 거쳐 비로소 서書의 물꼬를 미술로, 서구로 새롭 게 트는 일이다. 더 정확히는 서書의 영역을 미술까지 넓힌 것이라기보다 서 書의 본래 영역을 되찾은 행보다. 정통보수의 외연을 진보까지 개척한 것이 자 그 역사적 깊이로 말미암아 진보영역까지도 정통으로 돌아오게끔 한 지 점은 소헌 만의 독자적인 성취다 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 태초로부터 >는 소헌의 서예궤적에서 동과 서가 하나 되는 결정판이다. 재삼 강조하지만 그 이유는 서書를 중심으로 현대미술을 녹여냈 기 때문이다.
< 태초로부터 >는 이우환이 있는가 하면 박서보 정창섭도 있다. 르네 마그 리트는 물론 피에르 슐라즈, 프란츠 클라인, 안토니 타피에스도 포착된다. 하 지만 이들과 소헌이 다른 것은 서書언어의 유무다. 선線이 아닌 필획筆劃, 즉 평면의 라인(line)이 아닌 입체의 스트록(stroke)에 근거한 구축적인 공간경영 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난다. 소헌은 전통과 현대, 동과 서가 여하히 하나로 만날 것인가의 문제를 이렇게 < 태초로부터 >로 풀어낸 것이다.
그런데 해명해야 할 문제는 또 있다. ㄱㄴㄷㅇㅋㅌㅆ... 과 같이 눈에 보 이는 이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필획과 필획의 틈 사이로 < 태초로부 터 >의 소리가 들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태고의 적막이기도하고 우주탄생의 굉음이기도 하다. ‘눈’ 이전에 ‘귀’, 즉 ‘보기’ 이전에 ‘듣기’의 문제까지 소헌 은 < 태초로부터 > 제기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소리’를 눈으로 보게 함으로 서 소리에서 한글은 물론 서書의 오늘을 소헌이 찾아 나선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는 더 나아가서는 우리예술의 근저까지도 문제 삼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우리가 다 알고 있듯이 한글의 자음자모는 소리의 세계에 있는 우리말을 문자의 세계, 즉 시각언어로 표출한 것이다. 이에 대해 『훈민정음』의 < 정인 지 서문 >은“ 천지자연의 소리가 있으면[天地自然之聲]이면 천지자연의 글[天 地自然之文]이 있다”이라 갈파하였다. 서書는 문자文字 이전에 소리에서 비롯 된다. 그래서 소리는 서의 정신이고 영혼이라면 문자는 서書의 몸이다. 이런 맥락에서 소헌의 ‘ㄱ’은 태초의 말씀을 현현시킨 것이다. 음성언어와 문자언 어의 접점, 다시 말하면 소리와 형상이 하나인 지점이다. 혼돈[카오스]과 질 서[코스모스]가 하나인 ’카오스모스‘의 세계라고도 할 수 있다. 태초에 말씀 이 있었다. 그래서 태초에 서書가 있었다. 이렇듯 소헌 서書의 기조에는 한자 漢字를 관통하는 한글의 필획과 글꼴의 조형원리가 자리하고 있다. 더 나아 가서는 < 태초로부터 > 보듯이 현대미술의 토대이자 궁극까지 건드리고 있다.
5
여기서 소헌 서書의 궤적을 이미지와 텍스트를 키워드로 가로질러 볼 필 요가 있다. 70년 소헌 서書를 1차적으로 총결하는 이번 전시작품을 중심으로 보자.
서書의 형태나 이미지라는 입장에서는 한자漢字 한글의 전篆·예隸·해楷·행 行·초草 내지는 고체古體와 궁체宮體가 즐비하다. 또 한글 한자의 병존竝存과 각체의 혼융混融이 자유자재로 필획筆劃되면서 공간이 구축되고 경영된다. 더 나아가서 전각은 물론 문자추상까지 그 스펙트럼은 무한대로 확장된다. 소헌의 공간경영, 즉 장법章法을 보면 한글 한자 언어言語의 병존竝存과 서체 書體의 혼융이 한 축을 이룬다. 심지어 서書와 전각篆刻의 병존은 물론 바위그 림과 조각보가 한자 한글과 같은 문자와 나란히 자리하면서 유기적으로 어 울린다. 더 나아가서는 한글서와 한자서와 같은 서로 다른 문자는 물론 전서 篆書, 예서隸書와 해서楷書, 행초行草 각체가 병존된다. 급기야는 전예와 행초 가 한 문장에 혼융混融되어 구사된다.
다음은 서書의 절반이라 할 수 있는 내용, 즉 텍스트라는 입장에서 보자. 이번 전시의 역사섹션의 현판이나 어록은 그 자체만으로도 소헌이 편집해 낸 붓길의 역사이자 우리 역사의 길이다. 특히 내용, 즉 텍스트가 글자이미지는 물론 동시에 정신까지도 결정한다는 지점에 가서는 또 다른 < 태초로 부터 > 노래가 들린다.“ 정도준이 시와 명구를 서예로 풀어낸 것을 읽노라면 그가 오랫동안 추구한 철학적 사고와 작업이 조화를 이루어 낸 것 같다. 그 러나 예술에서 그러한 순간은 짧고 신비로운 자아감과 유사함으로 표현된 다. 정도준은 이를 탁월한 자세로 풀어낸다.”고 한 사람은 < 정도준: 찰나의 기억 >을 쓴 조나단 굿맨이다.
서書가 미술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내용과 조형이 한 몸이라는 점이다. 재삼 말하지만 소헌의 < 태초로부터 >가 진정으로 힘을 받을 수 있는 이유는 바로 텍스트와 이미지, 즉 내용과 조형이 역사적 맥락에서도 한 몸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바라보라
저 산과 바다, 저 하늘과 들판
내 역사와 하늘이 고였고,
대대로 누려온 곳 조국아
내 불타는 사랑
오직 너 밖에 또 뉘게 주랴.
노산 이은상의 < 조국아 >는 소헌 붓끝에서 반구대 암각화의 고래 사슴 호 랑이 맷돼지를 바로 지금 일 만 년의 시공을 뚫고 오늘 이 자리에 불러내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에밀레종 비천상飛天像의 영원의 노래와 경주 남산 부처 님의 화엄불국華嚴佛國의 빛은 소헌의 필획으로 말미암아 지금 온 우주에 가 득하다. 또 최치원 이순신 김시민 정약용 윤봉길 안중근 김구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소리를 무고憮古의 붓질로 증언해내는 소헌은 그 자체가 우리정신이 고 역사다.‘ 신에게는 아직도 열두 척의 배가 남아 있나이다’고 필획할 때는 소헌이 이순신 장군이다. 또 안중근이라 쓰고 영웅이라 읽을 때는 이미 소헌 도 안중근이 되어‘ 국가안위國家安危를 노심초사勞心焦思’하고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 흥례문興禮門 > < 진선문進善門 >과 같은 현판은 소헌이 한석봉이 되고 있다. 이 보다도 더 할 수 없는 철저함으로 나를 배제한 가운데 정자正字로 엄정 단아한 현판글씨를 박아낸다. 나를 완전히 죽이고 객관화시켜 마 침내 조선의 아름다움이 온전히 소헌의 붓끝을 통해 우리시대에 다시 드러 난다. 조선의 현판글씨는 조선의 혼魂이고 미美의 결정結晶이 아니었던가
6
오늘 소헌 서書의 존재의의는 무엇보다 그 영역을 전통의 힘으로 타파하고 무한대로 확장시켜냈다는 점에 있다. 지금 한국 서書는 100년이라는 식민지 와 서구화 터널을 지나면서 서가書家들의 전유물이 되고 말았다. 그 결과 일 상에서는 서書의 힘이 점점 상실되어가고 있다. 문자영상시대 한가운데인 오 늘날에는 외소外所해 질대로 외소해져 있다. 공모전이 서書의 전부가 되다시 피 하면서 미술은 물론 디자인 건축 시 춤과 같은 타 장르와 교류자체가 단 절된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서書는 이런 것이다’고 정의定義의 이름으로 가두어 놓 았다. 하지만 실존과 담을 쌓고 교통을 막아놓고 서書를 서書라 할 때 이미 서書가 아닌 것이다. 서를 서라 하면 이미 죽은 것이다. 그렇다.‘ 도를 도라 하면 영원한 도가 아니요[道可道非常道], 이름을 이름하면 영원한 이름이 아니 다[名可名非常名]’고 2,500여 년 전에 갈파한 사람은 노자다. 서書는 어떤 고 정된 실체가 아니다. 서書의 역사가 증명하듯 태초에 말씀이 있었던 이래 서 書는 시대와 사회, 필사도구의 발명에 따라 무수히 변하여 지금까지 왔다. ‘서書는 자연에서 비롯되었다書肇於自然’고 했듯이 우주자연의 변화를 화면 에 형상화 해낸 것이 서書다. 어떤 고정된 실체를 상정하여 특정 카테고리로 묶어둘 수 없는 존재다. 앞서 본대로‘ 천지자연의 소리가 있으면天地自然之聲 천지자연의 글天地自然之文이 있듯이 서書는 문자文字 이전에 소리에서 비롯 된다. 그래서 소리는 서書의 정신이고 영혼이라면 문자는 서書의 몸이다. 신 기神氣와 골육骨肉, 혈血이 부여된 몸이자 정신이고, 우주 삼라만상이다.
바야흐로 우리는 이제 동서구분이 무색한 문자영상시대 한가운데를 살고 있다. 인공지능人工知能이 주도하고 있는 지금이야 말로 바로 시공을 초월해 서 살고 있는 새로운 신화시대神話時代다. 그래서 < 태초로부터 >는 특히 소헌 이 기계언어가 아니라‘ 몸’이라는 언어로, 그것도 문자근원으로 돌아가 주 유하면서 문자영상시대 신화神話를 새롭게 필획筆劃하고 재구축再構築해낸 것이라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가 있다. 시대와 세상의 아들이 서書라 했을 때 시대물정이 변했다면 서書도 변하는 것이다. 노자老子가 《도덕경道德經》에 서‘되돌아가는 것이 도道의 움직임이다[反者道之動]이라고 갈파한 것은 오늘 소헌의 < 태초로부터 >를 적시한 것이다. 서와 미술의 눈에서 음악의 귀로 서 書의 권능을 근본으로 되돌린 것이 소헌의 < 태초로부터 >다. 적멸寂滅이다. 태 고의 고요이다. 소소밀밀疏疏密密의 결정結晶을 비집고 터져 나오는 태초太初의 빛이다. 다시 한국 서書의 내일은 100년 한 밤의 긴 터널을 뚫고 < 태초로 부터 > 오고 있다. 붓을 놓자. 다시 붓을 들자.(끝)
1
Jung Do-Jun (sobriquet: Soheon) turned 70 this year. A full century-and-a-half ago, Kim Jung-hui (sobriquet: Chusa) announced the closure of his calligraphy career with the completion of the signboard of Bongeunsa Temple. Kim was 71 years old that year: Jung is beginning fresh at an age when others wound down. Of course relative to Qi Baishi (齊白石, 1864–1957), who lived to 97, Jung can be considered still in his prime. So what does this mean? At present Jung is exploring the notion of the beginning of the universe. He is making a regression to the origins of history and is reverting back in time to the yesterday of yesterday. He is completely countering what we commonly imagine to be writing. Those who attempt to read through his writing are bound to lose their way.
I am referring to From the Origin , the series of works presented at this exhibition for the first time—initial consonants such as ㄱㄴㄷㅇㅋㅌ, and ㅆ. For example, let us take a look at From the Origin—ㄴㄷ and From the Origin—ㄱㅇ ㅌ. If you envision writing as a house, then this series represents something entirely different from the houses he has constructed up to now. It is different in terms of the columns and spatial configuration, that is, the strokes and structure. Works in this series are not simply the writing of words or sentences rendered with a brush. Neither are they syllables that can be pronounced as individual sounds. What they do is to bring phonemes to the forefront. Nevertheless, even these phonetic elements are ambiguous in form. They are occupying the entire space with ink while wriggling around and rubbing against each other.
What is revealed is purely the unique matière of ink as it creates subtle overlaps through variations of light and shade and consequently reflects a state of extreme tension. The sole soft spot comes in the white area that goes barely noticed – what appears like a crevice in a perpetual snowfield, a momentary lapse, or a streak of light.
Though it may seem banal, let us start by analyzing the structure of the works in the From the Origin series. As we all know, Hangeul , the Korean writing system, is composed of units comprised of consonants (jaeum , literally “child sounds”) and vowels (moeum , literary “mother sounds”). The units are visual symbols that denote the Korean language in written form. Take for example the character kkum (꿈).
The structure of this character is a combination of the consonant ㄲ, vowel ㅜ, and consonant ㅁ. In other words, the structure or gestalt is a single syllabic unit comprised of an initial, medial, and finial. Jung has taken this minimum unit of written language known as the syllable and further deconstructed it into phonemes—that is, down to the fundamental point at which it cannot be broken down any further.
In ancient times, the world had no laws, and it was characterized by simplicity. It was when simplicity was abandoned that law emerged. So from where did law originate? It did it from a single stroke. One stroke is the spring of existence and the root of all things in the universe.
(太古無法, 太朴不散, 太朴一散, 而法立矣, 法於何立, 立於一劃, 一劃者, 衆有之本, 萬象之根).
This is precisely how Jung manifests a world marked by lawlessness and simplicity, the basis of existence, and the origin of the universe, which Shitao (石濤, 1642–1707) recorded in Kugua Heshang huayu lu (苦瓜和尙畵語錄, Treatises on the Philosophy of Painting by Monk Bitter Gourd)
2
Why is it that Jung Do-Jun is undertaking such an adventure? Well, it is more of a justified trajectory and due succession rather than an adventure. This is because in terms of sequence, the works in the From the Origin series were produced after Jung had joined the calligraphy research association Iljungmukyeon and participated in exhibitions at domestic venues and 17 overseas museums. This particular series at present is what occurred at the intersection of the thorough conception and the unwavering dedication that Jung began to manifest around this period. In particular, the 17 exhibitions Jung held over the past two decades in various countries across the globe, including France, Germany, Italy, and the United States, are like forges in which he has tempered his work. Prominent critics and curators in the West have long foreseen the birth of the From the Origin series. Let us look at an excerpt from “Jung Do-Jun’s Moment of Awakening,” an essay written by the art critic Dr. Robert C. Morgan:
“By utilizing original source material from Chinese and Korean scripts in new ways . . . Jung has evolved his own artistic style . . . . Jung is searching a new terrain that gives eloquence and demeanor to the brush. [He] opens the void as a playful form of music, creating a sudden reversal between time and space, creating and fomenting galaxies unknown to the astronomer but known intrinsically to the human heart.”
Morgan highlights Jung’s development of his unique artistic style through an extraordinary application of materials and tools. At the same time, he testifies that Jung summons the universe of writing by managing time and space in a musical manner. It is assumed that the Heaven, Earth, and Man series < fig.01-04 > that Jung began in 2004 is a precursor to the From the Origin series, and the series is conceived out of the works of the “seal series” created ten years ago, including One Mind , Challenge , and Affluence, Nobility, Peace, and Endless Delight < g.23-25 >. The following is from an interview with Jung in March 2017 regarding his working process at the time:
“In the beginning, I didn’t know what to do after impressing the seal on the painting. I lacked confidence. There was no way to fill the empty space, so I tried to think of a strategy to deal with this. Then I pictured the bits of stone flying here and there when carving out a seal with a knife. This is precisely what a stroke is. A stroke must embody the impression of piercing a hole through a wall using a gimlet. Cement particles would scatter as the gimlet makes its way, but in the case of paper, the brush moves forward while holding liquid in its bristles. A stroke must be rendered by means of the frictional force of the paper, ink, and brush. It is produced by infinitely contemplating an unknown form and then visualizing it by pouring ink over it in a state that is neither natural nor artificial, neither coincidental nor inevitable.”
It is interesting how Jung could associate a stroke with the workings of a knife. These are okluheun (屋漏痕, Ch. wu lou hen ), a type of Chinese calligraphic stroke that likens the trailing of ink to rainwater trickling through the crevices of dilapidated walls, as well as chuhoeksa (錐劃沙, Ch. zhei hwa sa ) and ininni (印印泥, Ch. inn inn nee ), which respectively mean ‘an awl-drawing on sand’ and ‘pressing a seal in mud.’ They are likened to marking a line with a sharp knife on a cement floor or with an awl on sand, both of which yield raised marks. This is precisely the self-consciousness and self-complacency of the stroke. With the strokes of Jung, what had before existed individually connects and comes to share vitality. From the Bangudae Petroglyphs to the writing of An Jung-geun, they are all similar in terms of strokes. The From the Origin series differs only in that its subject matter is vowels and consonants; it is in the same vein with the seal series, merely a reversed version. In this light, experimentation and the modern are for Jung not disconnected from tradition and history. They have existed as one, fermenting and maturing over a long period of time.
3
Nevertheless, in regard to the work of Jung, a series like From the Origin which can be classified as experimental or modern undoubtedly comes as a shock. What could be the reason underlying this? It probably has to do with the fact that Jung is more than anyone else a legitimate inheritor of tradition. Jung has been known as a conservative traditionalist even among the literati in the Korean calligraphic realm. Therefore, many have held high expectations—that even if contemporary calligraphers change, artists like Jung will uphold the tradition of writing; they will pursue a concerted effort to work within the boundaries of characters, as they have done until now.
This is understandable, given that Jung’s calligraphic journey of seventy years has in itself been the product of active participation in the history of post-war Korean calligraphy. Jung has energetically taken part in the cradle of Korean calligraphy and the heart of the apprenticeship education system known as seosuk (private school), as well as in competitions. This is exemplified by his membership in Iljungmukyeon and the Grand Prix from the National Exhibition.
Moreover, at least from Gaehwagi (the era when the Joseon Dynasty developed into a more modern form while undergoing a period of enlightenment) in the late 19th century until now—particularly in the 20th century—calligraphy and art have been regarded as completely distinct, like two opposite cardinal directions— East and West. For calligraphy, which fancies itself as the acme of the art of the East, to covet the art of the West would be an act of heresy. Even experimentation is only possible after departing from writing. Crossing between the two realms is an implicit taboo even today. The majority of the Korean calligraphic community still adheres to this point. In this vein, Korean contemporary art is on equal terms with writing. It does not view or accept writing as part of the identity or root of the arts of Korea, and moreover of East Asia.
In this light, it would be strange if the transformation by Jung—one that has transcended the Korean calligraphic world characterized by the intersection between light and dark and merits and demerits and has reached the heart of the contemporary art world—did not spark debate. From a different perspective, in the From the Origin series Jung has declared war on not only the calligraphic world, but also the art world in general in regard to what is the fundamental spirit of our arts and the direction in which we should progress forward. In political terms, such exploration by Jung marks a conversion from a traditional conservative to a liberal. Nonetheless, what is clear is that considering the traditional and modern and moreover orthodoxy and experimentation as a whole rather than individually, the case of Jung differs from the conventional traditionalist conservatives and authentic liberals.
4
The From the Origin series demonstrates that for Jung Do-Jun there is no longer a boundary between calligraphy and art. Also, in terms of calligraphy, Jung freely plays with content and form and text and image, both as a whole and separately. In the exhibition, the section “Cave, From the Origin” appeals entirely to images, whereas the “Structure I, The Universe of Scripts,” “Structure II, Separate Yet Together,” and “Brush Trails, The Path of History” sections feature images and text united in harmony.
From the Origin—ㄱㄴㄷㅈㅋ < g.14 > can be said to be an absolutely abstract work rendered in thousands of shades of ink, whereas Tiny Room in Flower Sage Temple < fig.87 > can be considered a mandala comprised of strokes and script. Pleasure < fig.29 >, Always Joyful < fig.90 >, and Wishing Prosperity in Everything < g.91 > are similar in structure despite the differences between Korean and Chinese scripts. Depending on how the strokes are rendered, however, the amplitude of the formative aesthetics is infinite from structure to rhythm. In this way, when examining the works of Jung, experimentation and modernity are notions that cannot be addressed absent tradition and history, and vice versa. As demonstrated in this exhibition, the real point at which Jung’s grounding in tradition and history proves its merits comes when he brings in experimentation and modernity. As mentioned previously, the Heaven, Earth, and Man series from 2004 and the seal series of 2006 were flares, whereas the From the Origin series, showcased for the first time at this exhibition, is like a finishing blow.
In other words, the From the Origin series breaks down the boundaries of what we had commonly deemed calligraphy. To be more precise, it is with Jung that the borders of calligraphy dissolved. There have been a number of attempts to blur the boundaries between calligraphy and art prior to Jung. Such attempts include Kim Gi-seung’s Ink Shadow from the late 1960s and the Contemporary Calligraphy movement and the Mulpa movement in the 1990s and 2000s, respectively. Nonetheless, what is unique about Jung’s effort is that the two realms of art and calligraphy did not abandon each other.
Let us take a look at Dansaekhwa , the Korean monochrome paintings, in the same light. Lee Ufan, Park Seo-bo, and Chung Sang-hwa, whose abstract paintings are original and global, have not yet spoken about the association of their paintings with calligraphy. Therefore, Jung’s transformation is an issue that surpasses the personal level. It marked the expansion of calligraphy into the realm of art as a result of repeated attempts by the calligraphic world. To be more precise, it is not an expansion of the sphere of calligraphy into that of art, but the reclamation of the original domain of calligraphy. It can be said that the extension of the influence of traditionalist conservatives to the liberals and moreover the consequential reclamation of the liberal field into that of the traditionalists is an independent achievement of Jung.
In this light, From the Origin is the definitive move in drawing the East and West together into Jung’s calligraphic trajectory. The reason behind this, I emphasize once again, is because the series embeds contemporary art into writing.
From the Origin is reminiscent of works by Lee Ufan, Park Seo-bo, and Chung Chang-Sup. Not only Rene Magritte, but also Pierre Soulages, Franz Kline, and Antoni Tàpies can be spotted as well. Still, Jung stands apart from the abovementioned artists in that his works are characterized by the existence of calligraphic language. The fundamental difference lies in structural spatial management based on three-dimensional strokes rather than two-dimensional lines. Jung addresses the issue of how to bring together the traditional and the modern and East and West through From the Origin.
However, there is yet another issue to address. What is visible to the eye, such as the consonants ㄱ,ㄴ,ㄷ,ㅇ,ㅋ,ㅌ, and ㅆ, is not everything. There are sounds emanating from the gaps between the strokes. At times the sounds are the silence of antiquity and, at other times, an explosive roar that heralds the birth of the universe. In From the Origin , Jung sheds light on the issues of the eye coming before the ear, that is, sight coming before hearing. In other words, by allowing viewers to observe sound through the eyes, Jung presents not only Hangeul, but also the calligraphy of today through sound. This matter eventually touches upon the very foundation of our arts.
The consonants and vowels of the Korean alphabet are expressions of sound in the form of visual language. In the foreword to the Hunminjeongeum (literally “The Correct/Proper Sounds for the Instruction of the People”), the document presenting a new native script for the Korean language, Jeong In-ji writes, “If there are the sounds of heaven, earth, and nature, then there can be writing of heaven, earth, and nature.” Writing is derived from the sound that precedes script. Therefore, sound is the spirit and soul of writing and script is its body. In this light, Jung’s rendering of ‘ㄱ,’ the first consonant, is a manifestation of the Word—the point at which vocal and written language, in other words, the point at which sound and form, come together as one. It can be said to be a field of “Chaosmos” where chaos and order coexist. In the beginning, there was the Word, and that is why in the beginning there was writing. In this way, the formative principles of the strokes and script of Hangeul that transpierce the Chinese script underlie Jung’s calligraphy. Moreover, Jung’s calligraphy, as demonstrated by From the Origin , impacts the foundation and even the finality of contemporary art.
5
It is important to scrutinize the path of Jung Do-Jun’s calligraphic works through image and text, and the works displayed in the present retrospective exhibition will be the subject of this investigation.
Let us first observe forms and images in Jung’s calligraphy. Jung enthusiastically employed different types of scripts, including the five major scripts—namely, the seal (篆), scribe (隸), standard (楷), semi-cursive (行), and cursive (草) scripts— as well as classic (古體) and court (宮體) styles. Furthermore, he was unhesitant in composing works juxtaposing Hangeul and Chinese characters and joining different types of scripts within a single piece. Jung expanded the spectrum of his writing by inserting seals and letter abstractions as well. In short, Jung composed his writing by placing Hangeul and Chinese characters side by side and blending different types of scripts. In addition, his compositions organically merged calligraphy in Hangeul and Chinese characters with seals, rubbings of rocks, and patchwork, and the calligraphy in a single work can vary in script from seal script (篆書) to clerical script (隸書), standard script (楷書), and semi-cursive and cursive scripts (行草). Sometimes seal and clerical scripts, or semi-cursive and cursive scripts are fused within a single sentence.
Secondly, let us examine the content (or text), which make up half of his calligraphic works. The signboards of historic buildings and analects of renowned figures presented in the historical section of this exhibition relate the history of Korea as well as that of Jung Do-Jun’s calligraphy. The content, or the text in the case of his works, determines the images of letters as well as their spirits , and this echoes another song of From the Origin. It was Jonathan Goodman who said in his article Jung Do-Jun: A Moment of Memory , “Reading Jung Do-Jun’s works of poems and famous sayings makes you realize that his philosophical thoughts and works that he had long pursued has finally been harmonized. However, such moments last only for a moment in arts and the harmony is represented through rendering the subjects similarly. And Jung Do-Jun is particularly skilled in representing the harmony.”
What is decisively distinct between calligraphy and art is that the content and form of the former is single-bodied. Jung Do-Jun’s From the Origin series is particularly significant in that the texts and images, or the content and aesthetic forms, coincide and harmonize even in a historical context.
Look at those mountains, the sea, the sky and the fields
Where my history and legend infiltrate.
My dear motherland that has existed through generations,
To whom else could I give my burning love but you?
“My Dear Motherland” by Yi Eun-sang (penname Nosan) is rendered into calligraphy by Jung Do-Jun, who incorporated whales, deer, tigers, and wild boars from the Bangudae Petroglyphs into the work. In the same vein, Jung’s rubbings also breathe life into the songs chanted by the heavenly maidens of the Sacred Bell of King Seongdeok the Great and into the Buddha of Mt. Namsan in Gyeongju. The immortal sayings by Kim Si-min, Jeong Yak-yong, Yun Bong-gil, An Jung-geun, and Kim Gu that were transcribed by Jung and his brush and ink offer up our history and spirit. When Jung wrote “Twelve Ships Still Remain with Me,” he was Admiral Yi Sun-sin himself. Also, Jung became An Jung-geun when he wrote The Hero, An Jung-geun and worried over the security of his country.
When Jung wrote the signboards for Heungnyemun Gate and Jinseonmun Gate, he became Han Seok-bong, a leading mid-Joseon calligrapher. He completely removed himself when he executed the writing for the signboards and inscribed the characters one by one in a neat, printed style. He eliminated and objectified himself while writing, and consequently extracted the beauty of Joseon with his brushwork.
6
Jung Do-Jun’s calligraphy is particularly significant in that he maintained and expanded the field utilizing the power of tradition. After undergoing colonization and westernization over the past century, calligraphy has become an exclusive product of professional calligraphers in Korea. Consequently, the position and strength of calligraphy have been eroded as we live in a visually-oriented society. Calligraphy has recently been promoted and encouraged only through a few competitions, and its collaboration with typography design, architecture, poetry, and dance, among other fields of art, has also withered.
The definition of ‘calligraphy’ has been fixed to a single meaning. However, when calligraphy is shut off from the actual world, it is no longer calligraphy. When calligraphy is only calligraphy, it is as good as extinct. Indeed, as Laozi said in Daode Jing (道德經), “The Dao that can be told of is not the absolute Dao. The names that can be given are not absolute names,” calligraphy is not a fixed entity. Since the invention of letters, and as evidenced by its history, calligraphy has transformed itself in accordance with the development of writing tools across different eras and societies.
There is a saying that “calligraphy derives from nature,” so calligraphy is a rendition on paper of the changes of the universe. Calligraphy cannot be delineated with a single definition or confined into a certain category. As mentioned earlier, if there are sounds of heaven, earth, and nature, then there can be calligraphy of heaven, earth, and nature. Calligraphy develops from sound, and thus sound is the spirit of calligraphy and letters are the body of calligraphy. Writing embodies the spirit, bone, flesh, and blood, as well as all creation in the universe.
We live amid a visually-oriented society, and the contemporary world led by artificial intelligence (AI) is a neo-mythological age that transverses time and space. The From the Origin series is therefore particularly significant in that Jung Do-Jun has newly built and created with his brushwork the myth of a visually-oriented age with the language of ‘body.’ If calligraphy is regarded as the child of our era and world, then it is subject to change as the world evolves. As Laozi said in his Daode Jing “Returning is the movement of Dao (反者道之動).”
Through his serial works in From the Origin , Jung has shifted the competence of calligraphy from the eyes of calligraphy and art to the ears of music. It is annihilation. It is the silence of ancient times. It is the primal light that gleams from the crevice of a dense yet loose crystal. The future of Korean calligraphy will derive out of From the Origin as it transits a further long, centennial tunnel of extended night. Let us put down the brush. Let us pick up the brush once again.